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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한 빵과 잔을 먹고 마실 때에 우리들의 죄가 용서를 받아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다는 설명이, (6) 속죄와 감사의 설명 외에 다른 성경적 근거가 있는가?

본문 (6) 속죄와 감사의 설명과 같이 시편 40장 12절과 고린도 후서 5장 21절의 말씀에 의하면, 나의 죄가 주님의 죄가 되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피를 흘리신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 고해서 오늘 나의 죄가 자동적으로 없어져 내가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지금 현재에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일 혹은 10년 후에 발생하는 죄까지도, 2000년 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인하여 죄가 없어졌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하여 큰집에서는 고해성사를, 작은집에서는 혼자서 기도에 열중하기도 하지만, 유월교회에서는 축복한 빵과 잔을 통하여 죄를 용서받고 있다.

 

마태, 마가, 누가의 3복음서에서는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과 잔을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는 나의 몸과 피라 말씀하시며 먹고 마시라고 하였다.

 

이번에는 요한복음 6장 33~63절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자,『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ㅡ 53절』

 

주님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주님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우리에게 생명이 없다고 하는 53절의 말씀에서「생명이 없다」라는 말씀은, 우리가 보통 자주 이야기 하는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는 말과 같다.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 = 「구원이 없다」 =「죄 사함이 없다」

먹고 마시지 않으면 ⇒「죄 사함이 없다」 = 「구원이 없다」= 「생명이 없다」

 

요한복음 6장 53절의 말씀을 정리하여 보면, 주님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주님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우리에게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이며,  이 말씀의 결론은 축복한 빵과 잔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우리에게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축복한 빵과 잔을 생명의 양식이라고 하기도 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ㅡ 54절』이 말씀은 53절의 말씀을 뒤집어 놓은 것으로서, 우리가 축복한 빵과 잔을 먹고 마실 때 죄 사함을 받게 되어 구원이 있고 영원한 생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먹고 마실 때 ⇒ 「영생을 가졌다 ↔ 생명이 있다」= 「구원이 있다」= 「죄 사함이 있다」

먹고 마실 때 ⇒ 「죄 사함이 있다」= 「구원이 있다」= 「영생을 가졌다 ↔ 생명이 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1장의 말씀처럼 축복한 빵과 잔을 먹고 마실 때에,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심으로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6) 속제와 감사」의 설명처럼 레위기에 나오는 장막의 제사와 새 언약의 속죄제와의 관계, 나의 죄가 속죄의 양 주님께 옮겨진 사실을 모두 이해를 못한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절차는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 나에게 죄 지은 사람들을 모두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둘째, 축복한 빵과 잔에는 영적으로 내려주신 주님의 몸과 피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

[속죄와 감사의 거룩한 성례에 쓰일 빵과 잔에 대한 기도 ㅡ 「구세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유월절 속죄의 양으로 희생되셨으니, 우리가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로 우리의 죄를 씻고자 하나이다. 축복하시고 하늘에서 내려 이 빵과 잔에 함께 하시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에,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로 정결하게 하옵소서. ㅡ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이름으로 구하옵나이다. ㅡ 아멘」]

 

셋째, 축복한 빵을 먹을 때에 나의 죄를 뉘우치고 고백한다.

 

넷째, 축복한 잔을 마실 때에 속죄의 기도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구세주 예수님의 피로서, 나의 죄를 씻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ㅡ 아멘]

 

다섯째, 나의 죄가 주님께서 흘리신 속죄의 피로 용서 받음을 믿으며,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신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 그리고 성령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기도로 끝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하여 『축복한 빵과 잔은 속죄와 감사의 거룩한 성례가』 되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 이후 우리는 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러 하느님과 단절이 되었으나, 구세주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어 새 생명에 이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ㅡ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는 것은? 먹고 마시는 자가 죄를 용서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성경적 근거로 고해성사와 기도를 통하여 죄를 용서 받을 수가 있다고 주장을 하는가?

 

 

[참 고]

어떤 사람들은 요한복음 6장에서 말하는 먹고 마시면 생명이 있다는 「인자의 살과 피」를 「말씀」이라든가,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잘못 해석을 한다.

 

첫째 : 계속 되는 58절의 말씀을 생각하여 보자,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빵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만나와 같지 아니하여 이 빵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주님께서는 왜? 58절에서 「만나」와 「인자의 살과 피」를 서로 비교하여 같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을까? 「만나」와 「인자의 살과 피」모두 신비스럽고 입으로 먹기는 마찬가지 이지만, 「만나」는 육신에 필요한 먹을거리에 불과하였지만 「인자의 살과 피」는 영생을 주는 음식이기 때문에,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만나」와 같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입으로 먹는 외면적 형태는 같으나「만나」는 육신을 위한 것이고, 「인자의 살과 피」는 영혼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를 하셨던 것이다.

 

둘째 : 제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육적인 살과 피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라고 하였을 때. 여러분의 생각처럼 말씀 이라든가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왜? 주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명쾌하고도 분명하게,「 너희에게 먹고 마시라는 인자의 살과 피는, 너희에게 일러준 생명의 진실 된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다.」라고 알려 주시지 않고, 왜 논쟁이 벌어지도록 내 버려 두셨을까?

 

그때 주님의 대답을 들어보자「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겠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인자의 살과 피는 누구의 주장처럼 성경66권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육은 무익하다는 부언 설명에서 육(肉)이라는 단어는, 66권의 말씀을 상징한다는 설명에 있어서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단어가 되지를 않겠는가?

 

육적인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충격적인 말씀으로 받아드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육적인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주는 영적인 살과 피를 말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빵과 잔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할 때에 그 빵과 잔에는 주님의 영적인 살과 피가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구체적인 이 대답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고 주님 곁을 떠나갔으며, 지금도 사람들은 축복한 빵과 잔을 먹고 마실 때 속죄와 감사의 성례가 되는 것을 믿지를 않고,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하여 고해성사를 한다든가, 주님을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2장 혼인잔치의 이야기에서 혼인잔치에 원래 청함을 받은 유대인들은 오기를 싫어하므로, 길에나가 사람들을 만나는대로 데려왔으니 바로 이방인이라고 불렸던 지금의 우리들로서 기독교 권역에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하느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나 타종교인들은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므로 기독교 권역에 속해 있지 않다.)

 

그리고 기독교 권역에 있는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것도 모두 알고 또 믿고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혼인잔치의 이야기에서 청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쫏겨나게 되는데,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한다. 지금 교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청함을 받고 택함을 입은 사람도 그 역시 하느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 ... 지금 우리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구하는 사람은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 ... 구하여서 얻게 되는 사람 역시 하느님께 택함을 받아야 되겠지만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