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의 가증한 것은 로마 군대가 아닌가?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다니엘이 말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내용이, 누가복음 21장에서는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라고 설명되어, 멸망의 가증한 것은 로마 군대라고 생각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서기 70년 9월 26일 예루살렘의 함락은, 로마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 티투스가 로마의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60~2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사망하였으며, 유대인들은 이 전쟁에 패배하여 무려 1900년 동안 세계를 떠도는 방랑의 생활에 들어가게 되는데,  24절의 ㅡ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ㅡ 라는 말씀이 실제 서기 70년부터 서기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국가를 세울 때까지의 역사적 사실과 맞아떨어져, 주님께서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은 로마의 군대라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멸망의 가증한 것을 말씀하시게 된 원인을 알아보도록 하자. 7절에 의하면 『어느 때에 그리고 무슨 징조』가 있느냐고 제자들이 묻게 되는데,  때[When]는 ㅡ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때이고, 징조[What sign]는 ㅡ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한다는 것이다.

 

미혹케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남을 속이는 것이다, 현혹시키는 것이다, 거짓말로 사기 치는 것이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미혹케 한다면?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아니겠는가? 적그리스도 역시 사람들을 미혹케 할 때에는 그리스도처럼 말한다, 다시 말하면 거짓 것을 하느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처럼 속인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지적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을 적그리스도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아니라고 미혹케 한다는 것이다. 마치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참된 도리처럼 속인다는 것이다.

 

서기 70년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은, 유대인 열성당원들이 주동이 되어 로마의 통치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일어난 정치적 전쟁이었으며[66년 ~ 73년]. 사도행전 8장에 의하면 스데반의 사건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는 큰 핍박이 있어 사도 외에는 다 흩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서기 70년도 무렵에 예루살렘에는 유대인들의 눈을 피해 숨어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있었기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걱정이 되어 숨어 피하게 하기 위하여 읽는 자는 무엇을 깨달으라고 하셨는가? 이러한 상황 바로 그때에 로마 군대가 주님의 이름으로 제자들을 미혹케 하는 일이란 과연 무엇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다니엘 11장 31절에서도 알 수가 있다. 제사를 폐하고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때에 궤휼로 타락시킨다고 하였다. 이때에 하느님을 아는 지혜로운 백성은 용맹을 발휘하여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나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으로 약탈을 당한다고 하였다. 로마 군대가 미운 물건이라 할지라도 이때에 지혜로운 자가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인가?

 

그것은 그때까지 교회에 없던 십자가를 걸어놓을 때에(또한 사탄에 의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올바른 제사를 사탄의 유혹에 따라 거짓된 방법으로 바꾼 거 역시 멸망의 가증한 것이 되며, 두 사건은 거의 동시대에 발생함을 다니엘은 기록하고 있다), 하느님을 아는 지혜로운 백성이 십자가 형상에 대한 예의는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을 가르치다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으로 약탈을 당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물리적 외부적 사건이 아니라 종교적 지식적 내부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21절에서 유대에 있는 자들은 도망을 가라는 말씀은, 교회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은 거짓된 가르침을 받지 말고 그들로부터 떠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이 되었던 성전의 돌들이 다 무너뜨려지리라는 말씀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모두 다 말이다.

 

누가복음 19장 44절의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에서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모두 무너뜨려 진다는 것이다.

 

『41절 ~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절 ~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안식=구원)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절 ~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절 ~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9장 41절에서부터 44절까지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시기전에 성전을 보시면서 말씀하신 내용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44절의 말씀에서 문제의 해답을 알아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고 무너뜨려 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한성서공회에서 발행한 성서에서 『보살핌』 이라는 단어는 각각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개역한글판 :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개역개정판 :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표준새번역 :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구원하러 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번역  :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동번역 : 너는 하느님께서 구원하러 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공동번역개정판 : 너는 하느님께서 구원하러 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CEV : This will happen because you did not see that God had com to save you.

 

권고(眷顧) 받는 날, 바꾸어 말하면 보살핌을 받는 날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구원하러 오신 때(=날=기간=1260년)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고 모두 무너뜨려 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때를 알지 못한다는 말씀을 해석하기를,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에 의하면, 돌들이 무너지는 일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으며,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하고 제자들이 묻자, 주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때를 알지 못한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한다는 것은, 적 그리스도의 활동을 말하는 것이다. 때문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고 모두 무너뜨려 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2000년 동안 기독교의 역사는 존재하였지만, 적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의 날(때=기간)이 일정기간동안 끊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적으로 낱낱이 자세하게 설명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고 무너진다는 말씀이, 70년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을 하겠는가? 하느님께서 로마군을 보내어 구원을 하시려 하였는가?

 

여기에서 돌들이란 하느님의 백성(성전=성소)을 뜻하는 것이며, 앞으로 이 돌들이 사탄의 가르침에 의하여 1260년 동안 구원사업이 중단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하늘 성전(성소=하느님의 백성)의 상징적인 지상의 예루살렘 성전을 빗대어 보시며 주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성경에 이르기를 예수님을 가리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씀이 있다. 건축자들이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들에게 배척당하신 예수님은 하느님에 의하여 새 성전을 지을 초석을 만들어, 그 머릿돌 위에 믿음의 돌들을 쌓을 수 있게 하셨다.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ㅡ 베드로전서 2장 6절』. 따라서 주님은 머릿돌이 되셨고 그를 믿는 우리들은 믿음의 돌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믿음의 돌들이 적그리스도의 유혹에 넘어가 주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초대 교회에는 십자가를 걸어 놓았다는 말씀이 없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십자가를 걸지 않아도, 십자가에 머리 숙여 예의를 표하지 않아도, 또한 거룩한 표라는 뜻으로 성호를 긋지 않아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데 있어서 아무런 지장이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성경에 없는 사실을 무엇 때문에 만들어 놓고 걸려 넘어지려 하는가? 또한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과 잔을 축복하시고 주시면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신 자신의 새로운 약속의 피라고 하시여, 축복한 빵과 잔에 함께있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에 죄 사함을 받음을 거역하고, 그냥 아무런 의미도 없이 먹고 마시는 행위 역시 멸망의 가증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로마 군대가 주님의 이름으로 미혹케 하는 종교적 일이란 있을 수가 없다. 또한 21절의 군대란 사탄의 힘[Force]을 뜻하는 말이다. 다니엘 10장 13절에서 다니엘에게 나타난 천사의 말을 들어보자 ㅡ 『바사 국군이 21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중 하나 미카엘이 도와서 올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한번 생각하여보자 ㅡ 21일 동안 지상의 바사 국군이 천사를 막았다는 것인가? 지상의 바사 국군과 미카엘이 싸웠다는 말인가? ㅡ 내용을 설명 한다면, 사건의 시대는 바사국[페르시아제국]때이며, 국군이란 천사를 가로막은 사탄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멸망의 가증한 것은 로마 군대가 아니라 십자가 형상과 거짓된 제사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고 하셨고, 이러한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않는다고 하셨으며, 처처에 큰 지진 기근 등의 이야기가 계속 됨으로, 세상의 끝날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는 것도 아님을 아울러 밝히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