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의 속죄제를 위하여 ㅡ 빵과 잔은 주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화체(전질변화)인가? 주님의 몸과 피를 의미하는 상징인가?

 

결론은 화체도 상징도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주님의 영적인 살과 피가 빵과 잔에 함께 있을 뿐이다.

 

 성경 어느 곳에도 빵과 잔이 주님의 몸과 피로 변화 된다는 말이 없으며, 빵과 잔은 주님의 몸과 피를 의미하는 상징이라는 말도 없다.

요한 복음 6장에 의하면 ㅡ

첫째 ㅡ 33절 ㅡ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

둘째 ㅡ 50절 ㅡ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빵이니.....

셋째 ㅡ 58절 ㅡ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빵이니.....

넷째 ㅡ 63절 ㅡ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Spirit]이요.....

 

 이해를 돕기 위하여......

[봉투는 빵과 잔, 돈은 주님의 몸과 피를 대신하여......]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봉투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것이니, 너희들도 이와 같이 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셨다.

제자들이 물었죠, 주님 이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돈" 이니라.

(주님께서 봉투에 오만원권 지폐를 몇장씩을 넣어서 전도 여행 때 쓰라고 기름 값으로 좀 보태 주셨나 보다.)

 

이때부터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봉투에 돈을 넣어 주면서, 이것은 "돈" 이니라 하였다.

 

▶ 꽃이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하여,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신지 어느덧 400 여년의 세월이 흐르던 어느 날,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 하였다. 축복한 빵과 잔으로 죄 사함을 받던 속죄 제도를 서서히 폐지하고, 개별적 죄의 고백(현재의 고해성사)으로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변경하였으며, 사탄의 유혹에 의하여 사람들은 거짓 것을 계속 가르치고 교회의 법으로 제도화 하였다.

(이때에 자기의 하느님을 아는 백성들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며 항의를 하였고, 사람들을 가르쳤지만 결국 사탄의 뜻대로 되고 말았다. ㅡ 다니엘 11장 31절) ◀

 

교회 재정이 바닥났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이때부터 교회의 사제는 봉투에 손을 얹고 기도 하기를 "우리가 받자올 돈이 되게 하소서, 아멘" 하였다.

그러나 이 방법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 사탄의 뜻이 되기 때문에, 결코 봉투가 돈으로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그들은 지금까지도 빈 봉투를 주고 받으며서, "이것은 돈 이다" 라고 믿었던 것이다, 아주 황당하고 어리석은 아이디어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여기 저기 모여서 웅성거리기 시작 하였다.

봉투를 돈으로 만든 사람들처럼 성경을 또 자기네 방법대로 멋지게(?) 해석한 것이다.

"저것은 이단의 짓이다." "봉투는 절대로 돈이 될 수가 없다."

주님께서 봉투를 주면서 "이것은 돈 이니라" 라고 하셨으니, "그 봉투는 돈을 상징하는 것이 틀림이 없다." 라고 또 거짓 것을 만들어 믿기 시작 하였다.

 

그래서 봉투로 돈을 만들어 주던 무리들은 이 새로운 무리들을 반역자로 몰아 교회 밖으로 내 쫓아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이 두 무리들은 원수가 되어 서로 이단이라고 하면서 등지고 살아 왔는데, 요즈음에는 가끔 왔다 갔다 놀러도 다니면서, 뭐! 다시 하나로 뭉쳐 보자고 하는 모양이다. (2002년 12월 16일 서울 필동 한국의 집에서 최기산 인천 교구장이 위원장이 되어,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KNCC) 회원 교단들의 총회장 총무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관계자, 루터교, 정교회 대표들이 모여 간담회를 갖었는데,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회의를......)

 

지금에 와서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걸까? 서로 다른 교리로 일치가 될까? 어느 한쪽 교리로 일치를 이룬다면, 지금까지 존재 하였던 교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각자의 교리를 그대로 인정을 한다면 이것 또한 모순이 아닌가?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교리가 그동안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으니,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만들어 주고받지도 말고 상징으로도 주고받지를 말자.

유월교회에서 선정한 평생 캠페인 ㅡ [봉투에 돈을 넣어서 주고 받기로 하자!]

 

문제는 주님께서 깊으신 뜻이 있어서 일부러 그러셨는지, 아니면 그냥 그러셨는지 거기 까지는 알 수는 없으나......

봉투를 주면서 "여기에 돈을 넣었다" 라고 명쾌하게 하시지 않고, 봉투를 주면서 "이것은 돈 이니라" 라고 말씀 하셨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봉투에 돈을 넣어서 줄 때에 누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봉투에 돈을 넣었어" 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냥 "돈이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강조할 말은 "돈" 이지 "봉투" 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믿음과 신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뢰와 믿음이 없다면, 봉투에서 돈을 꺼내 보인 후에 주고, 받는 사람도 봉투에서 돈을 꺼내 확인을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때때로 좀 모호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ㅡ 요한 계시록 17장 5절에 의하면 큰 음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비밀이라" 라고 하였다. 왜? 사실대로 그 이름을 기록하여 훗날에 교훈으로 삼지를 않았을까? 예를 들어 "무슨 무슨 교회" 라고 기록이 되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유혹에서 빠져 나올 수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것은 택함을 받은 사람에게 성경은 밤길에 등불과 같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성경은 밤길에 튀어나온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봉투를 주면서 "이것은 돈 이다" 라고 말씀 하셨다 해서, 어리석게도 봉투는 곧 바로 돈이다. 그럼으로 봉투를 붙잡고 "돈이 되게 하소서[변화 = 화체]" 라고 한다 든가, 봉투는 "돈을 의미 하는 상징이다" 라고 하는 바보 같은 짓은 이제 그만 하여야 한다.

 

또한 변화(화체)와 상징보다도 더욱더 중요한 사실은 축복한 빵과 잔에 함께있는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실때에 우리들의 죄가 용서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대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침례교회 J목사가, 신천지 이만희를 가리켜 말하기를 "너희가 진리라면 그 전에는 무엇을 믿어서 구원을 얻었다는 말인가? 라고, 역사성과 보편성을 거론하여 그를 이단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고 신천지를 진리라고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천지 역시 그리스도를 가장한 적그리스도의 집단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와 같이 비논리적으로 500년 혹은 1500년 세월의 역사를 자랑삼아 각각 자신의 길을 진리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1500년 역사 앞에서 J목사가 말하는 500년 역사가 진리라면? 앞으로 500년 뒤에는 신천지 이만희도 J목사와 똑같은 논리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개꼬리 삼년 묵었다고 절대로 용꼬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이다. 그들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서로 속기도 하며 속이기도 하여 착각 속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짝사랑할 뿐이다. 왜냐하면? 결코 주님의 잔을 마귀의 잔과 함께 마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니엘 12장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깊게 읽고 생각하여보자. 그 말씀 안에 아주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 12장 4절 ~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 7절 ~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8절 ~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9절 ~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10절 ~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11절 ~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12절 ~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

 

4절에 의하면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는 언제가 되는 것인가? 바로 뒤에 나오는 사람이 빨리 왕래하는 때가 마지막 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니엘서의 봉함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는 때의 바로 이전 까지가 된다. 왜냐하면? 이제는 봉함되었던 말씀이 개봉되어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많은 사람들의 지식이 더하여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되어 10절의 말씀에 응하여야 하기 때문이며, 또한 10절의 말씀을 뒤집어 보면 봉함 되었던 시대에는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해, 연단을 받을 수가 없어 정결하게 하여 희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인류의 길고 긴 역사를 들여다 볼 때에, 사람이 걸어서 다니다가 급한 일이 있으면 뛰어서 가고, 아니면 말(馬)을 이용하여 조금 더 빨리 이동하는 정도의 왕래가 역사적으로 아담의 때부터 오래 계속되어 왔었다.

 

그러다가 증기기관의 출현으로 사람들의 이동 속도가 빨라졌으나, 이는 1825년 영국인 Stephenson에 의하여 처음으로 발명되었으며,

 

1844년 미국의 Samuel Finley Breese Morser가 모스 전신기를 발명하여 워싱턴과 볼티모어간의 전보 통신에 성공하였고,

 

가솔린엔진 자동차가 발명된 것은 1885년 독일의 칼 벤츠가 3륜자동차를 제작한 것이 그 시발점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다가 오늘날에 와서는 인터넷 시대가 되어, 언제 어디서나 많은 정보를 빠르게 서로 교환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인류의 길고 긴 역사 속에서 이제야 12장에서 지적한 대로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다니엘서 12장의 말씀을 정리하여 보자, 증기 기관차의 출현부터 오늘의 인터넷 시대가 바로 사람이 빨리 왕래하여 지식이 더하는 시대라는 것이며, 그 이전의 세대까지는 말씀이 봉함되어 그 지식의 말씀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성소와 백성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적그리스도(작은 뿔)에게 짓밟힘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7절에서 언급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졌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에는 구원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말씀이 개봉된 오늘날에 와서는, 지혜 있는 자는 매일 드리는 제사의 폐함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고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비논리적으로 500년 혹은 1500년 세월의 역사가 있다고 하여, 그 길이 결코 구원의 길로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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