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드로의 천국 열쇠 ]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태복음 16장 19절]

 

ⓑ『성령을 받으라 ㅡ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한복음 20장 23절]

 

위의 [마태복음 16장 19절] 과 [요한복음 20장 23절] 의 말씀에서 추론하여 만들어진, 고해성사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교리가 성경적인지 비성경적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우선 죄라는 것이 발생할 때는 행위자(가해자)와 그 대상(피해자, 하느님, 기타 유형무형의 사물) 이 있게 되는데, ⓐ 와 ⓑ에서 말하는 땅에서 풀어주는 자(죄를 사하여 주는 사람)는 누구이며, 땅에서 이와 같이 할 때에 하늘에서 풀어주는 대상자(수혜자 = 죄 사함을 받는 사람)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땅에서 풀어주는 자(죄를 사하여 주는 사람)를 A라 하고, A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풀어주는 대상자(수혜자 = 죄 사함을 받는 사람)를 B라고 할 때에, A와 B가 동일한 한 개의 개체로 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왜곡하여 A(죄를 사하여 주는 사람 = 고해소의 신부)와 B(수혜자 = 죄 사함을 받는 사람)를, 각각 두 개의 개체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고해성사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A와 B가 동일한 한 개의 개체로 보는 것이 성경적 올바른 해석이라면, 고해성사는 이 땅에서 더는 존재할 수가 없는 허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첫째 ~ 마태복음 6장 14~15절 『너희(A)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B)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A)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B)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따라서 결론은  A와 B는 동일한 한 개의 개체임을 증명 할 수가 있다.

 

둘째 ~ 마태복음 16장 19절의 말씀은 마태복음 18장 18절에도 존재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이 말씀을 하시게 된 동기는 형제가 죄를 범하고도 그 잘못을 알지 못할 경우에 권고하여,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이 있으면 찾듯이, 합심하여 구하면 아버지께서 이루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때에 베드로가 죄의 용서에 관해서 질문을 할 때에 주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여 주라고 말씀하시며,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주인은 종의 만달란트의 빚을 탕감하여 주었으나, 그 종은 자기에게 백데나리온 빚진 동료에게 빚을 갚으라고 옥에 가두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주인은 그 종을 불러다가 말하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는데, 동료의 빚은 종이 직접 탕감하여 주고, 종의 빚은 그 주인이 직접 탕감하여 주는 것이지, 빚(죄)은 제 삼자가 대신 탕감하여 줄 수는 없다는 것이며, 그 이야기의 결론은 35절 다음과 같다. 『너희(A)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B)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둘째의 글에서도 A와 B는 동일한 한 개의 개체임을 알 수가 있다. 너희가 형제를 용서하지 않았음으로 천부께서도 너희의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지 않은 너를(A = B)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다. 바꾸어 말하면 『너희가 형제를 용서하였음으로 천부께서도 너희의 형제를 용서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용서한 너를(A = B) 용서하시겠다는 말씀이다.』또한 베드로도 형제의 죄를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야, 천부께서도 베드로의 죄를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여 주시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열거한 죄 사함에 관한 하느님 말씀의 동일한 원칙에 의하여, [마태복음 16장 19절] 과 [마태복음 18장 18절]의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A) 하늘에서도 매일(B)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A) 하늘에서도 풀리리라(B).』라는 말씀도, 죄를 사하여 주는 사람(A)과 죄 사함을 받는 사람(B)을 동일한 한 사람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지금까지의 [마태복음 16장 19절]. [마태복음 18장 18절]. [마태복음 6장 14~15절].[마태복음 18장 35절]의 공통점은, 너희가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지 않을 때에, 하느님께서도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지 않으시겠다고, 직접 관여하시어 미래(will)의 일에 대하여 약속하셨지만, [요한복음 20장 23절] 에서는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시어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이 없다.

 

하느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성령님께서 함께하신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20장 23절]의 『성령을 받으라 ㅡ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뉘 죄든지 사하여 주어야만  마태복음 6장 12절 주님께서 가르쳐준 기도문에 의하여,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아버지께 기도를 할 수가 있을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께서 직접 관여하시는 죄 사함의 최종 수혜자(B)는 뉘 죄든지 사하여준 사람(A)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A = B)

 

[[『성령을 받으라 ㅡ 너희가 뉘 빚(죄)이든지 탕감하여주면 탕감 받을 것이요, 뉘 빚(죄)이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빚도 탕감하여 주옵시고』]]

 

천국 열쇠의 핵심은 용서를 주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네가 남을 용서하였기 때문에 너도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죄라는 것이 발생할 때에는 행위자와 그 대상이 있다고 하였다. 때문에 죄를 발생시킨 행위자(가해자)가 잘못을 뉘우치고 그 대상인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때에, 오직 피해자만이 용서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형제의 죄를 피해자가 용서를 하여 주었을 때에, 이를 기쁘게 생각한 선하신 주인이 그 사람(피해자)의 죄를 용서하여 준다는 말씀이, 종들과 결산하려는 임금의 이야기와 주의 기도문의 내용과 일치가 되는 것이다.

 

말씀의 핵심은 하느님께서는 형제(가해자)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 사람(피해자)에게는 하느님께서도 똑같이 그 사람(피해자)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따라서 용서하여주는 사람에게는 용서하여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의 죄 사함의 문제는, 피해자로서 형제(가해자)의 죄를 용서해 주었을 때에 한해서, 피해자의 모든 죄를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얻을 수가 있는 조건적 관계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건적 죄 사함이 하느님의 원칙일진대, 그 조건적 상태는 하느님만이 알 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건적 상태를 알 수 없는 고해소의 신부가 어떻게 죄를 용서하여 줄 수가 있겠는가? 만약 그 조건적 상태에 따라서 고해성사의 효력이 좌지우지(左之右之)된다면,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코미디가 될 것이며,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사하나이다』라는 사죄경(赦罪經)은 헛소리에 불과한 공염불이 될 것이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의 죄만을 위하여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요[데살로니가후서 3장 2절],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느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로마서 9장 16절], 하느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로마서 8장 29절]

 

따라서 오직 하느님만이 미리 정하신자를 알 수가 있고, 또한 부르시기 위하여 죄의 용서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고유권한이다. 스스로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교황이 고해신부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었다면, 죄를 고백하는 사람이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자인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는 초인간적 무당의 영력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무당의 영력조차 없이 하느님이 미리 정하신자와 관계없이 마구잡이로 죄를 용서한다면 그 용서는 거짓을 참인 것처럼 꾸며낸 것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로마 교황청과 단절되어있는 성공회와 정교회의 수많은 고해성사는 또한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 지상의 많은 고해소에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았다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다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하느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의 천국 열쇠는 고해소에서 신부가 제 삼자의 죄를 풀어주라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 자신의 죄를 용서 받게 하기 위하여 베드로 개인에게 주신 진실 된 믿음의 바탕에 용서와 사랑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반석 같은 진실 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천국 열쇠를 갖고 있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택하고 주신 진실의 믿음을 가졌기에 죽음의 권세도 이길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국 열쇠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죄를 용서 받기위하여 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영생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모세의 장막 제사에서 벗어나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던 것이며,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느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나도 땅에서 누구의 죄든지 풀어 주어야만 하늘에서 나의 죄도 풀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고해성사도 아니고 그냥 기도만으로 풀리는 것도 아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한 빵과 잔에 함께 있는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며, 나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며 감사의 속죄제를 드릴때에, 비로소 하느님으로부터 나의 죄를 용서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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