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한 빵과 잔을 먹고 마실 때에 우리들의 죄가 용서를 받아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다는 설명이, (6) 속죄와 감사의 설명 외에 다른 성경적 근거가 있는가?

 

【 히브리서 9장 8절 과 10장 19절 】

 

히브리서 9장 1절에서 7절까지 그 내용을 보면, 첫 장막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들어가 섬겼고,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부르며, 오직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번 들어가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렸음을 알 수가 있다.

 

이는 죄인이 죄를 회개하고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면 그 죄인의 죄가 짐승에게 전가되며, 제사장은 그 피를 첫 장막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 둘째 휘장 앞에 뿌리며 속죄를 하는데, 직접 지성소의 법궤위 속죄소에 뿌려 속죄를 할 수가 없는 것은, 거룩하신 하느님의 신성한 법궤에 죄로 물든 더러운 피를 직접 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로지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번 7월 10일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일 년 동안 더러워진 성소를 위하고 또 지성소를 위하여, 죄로 물들지 않은 짐승의 피를 법궤위 속죄소에 뿌림으로서 정결하게 하는 모든 예식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첫 장막 성소에서는 제사장이 둘째 장막 지성소에서는 대제사장이 각각 섬김으로서 그 역할이 다름은, 우리는 제사장이 되어 ( 베드로 전서 2장 5절 ~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첫 장막 성소에서 주님의 피로 속죄를 드리게 되고, 둘째 휘장 뒤 지성소에는 오로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성소 곧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게 하기 위함이다. ( 출애굽기 26장 33절 ~ 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 )

 

이와 같이 첫 장막 성소에서는 매일 같이 제사장이 들어가 섬기고, 지성소에서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 들어가 섬기는데, 9장 9~10절에 의하면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고,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기 때문에, 9장 8절에 의하면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새 언약에서 성소에 들어가는 길은 10장 19~21절에서 그 해답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His flesh), 또 하느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 히브리서 6장 19~20절  :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고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

 

6장 19~20절에 의하면 휘장 안에 앞서 들어가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셨으므로,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인 지성소에서 우리를 위하여 제사드림이 분명하고, 첫 장막 성소에서는 제사장인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들어가 속죄함이 합당하다.

 

다시 말하면 짐승의 피를 죄인 대신에 제사장들이 첫 장막의 성소에 들어갔던 방법을, 이제는 죄인이며 또한 제사장인 우리가 직접 주님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장막 제사의 성소와 지성소에서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각각의 예법은 현재까지의 비유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새 언약에서의 죄 사함을 받는데 있어서의 비유 즉 상징을 미리 보여 주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 언약에서도 성소에서는 제사장이 그리고 지성소에서는 대제사장이 죄 사함을 위한 예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롭고 산 길」에서 알 수가 있듯이, 새롭다는 것은 무엇에 비교 되는 말로서, 무엇에 비교하여 무엇이 새롭다는 것인가? 장막의 제사에서는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으나, 새 언약에서는 죄인이며 제사장이된 우리가 담력을 가지고 직접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새롭다는 것이며, 또한 장막에서는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겼지만 이 제사로는 죄를 없게 하지 못한다고 10장 11절에서 밝혔지만,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기 때문에 또한 새롭고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피로 성소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히브리서 10장 16절에 의하면,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라고 하셨다. 이제 새 언약에서는 하느님의 법궤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장막의 제사에서는 하느님의 법을 지성소 법궤에 두고,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 앞에 짐승의 피를 뿌렸지만, 새 언약에서는 「휘장은 곧 저의 육체(His flesh = 주님의 살은 곧 휘장) 라고 하였으므로, 속죄의 어린양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축복한 빵에 함께 계신 주님의 몸에 나의 죄를 뉘우치고 고백함은, 속죄의 어린양이되신 주님과 일치가 되며, 그 빵을 먹음은 곧 내 안에 있는 하느님의 법궤 앞에 드리운 휘장이 되고, 축복한 잔에 함께 있는 주님의 피를 마시며 속죄함은 법궤앞 휘장에 그 피를 뿌리는 것이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라고 말씀 하셨다. - 마태복음 26장 26 ~ 28절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의 제물이 되심과 더불어, 또한 대제사장이 되심을 알 수가 있는데, 우리는 주님께서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여서는 안 된다. 앞으로 주님께는 대제사장으로서 지성소에서의 제사 직분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우리의 성소를 정결하게 하시기 위하여,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산자가 공중으로 들림을 받을 때가, 장막의 제사로 말하면 일 년에 한번 속죄일 7월 10일 그때가 되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히브리서 9장 28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이 말씀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드리신 바 되셨으며,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두 번째 나타나신다는 것은, 구원사업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살과 피로 속죄제를 드리고 주님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계속해서 마태복음 26장 29절의 말씀을 들어보자 -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셨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이 말씀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오르신지 2000년이 지났지만, 주님께는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이 세상에 오실 때 대제사장의 직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아직도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다.

 

참고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겠다는 것은,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느님께 특별한 서원을 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민수기 6장 1 ~ 4절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나실인은 히브리어로 나지르 로서 억제하다 성별하다 라는 뜻)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축복한 빵과 잔에 하늘에서 주신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속죄를 할 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 우리를 불러올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축복한 빵과 잔을 먹고 마심은 우리의 죄를 용서 받기위한 새 언약의 제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월교회의 속죄제도는 구약의 장막제사에서 유래한 것이 결코 아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구약의 장막제사는 현재까지의 비유라고 하였으며, 히브리서 10장 1절에서도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참 형상이 아닌 것은 대속의 피가 다르기 때문이지만 그림자란 원래 그 본체에서 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현재의 속죄 제도를 비유로 모세를 통하여 장막제사에서 미리 보여주심은, 현재의 우리가 주님의 피로 속죄를 하는데 있어서 그 예법을 알 수 있게 하는 그림자가 되게 하였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본체인 현재의 속죄제도에서 유래한 것이 그림자 모세의 장막제사로서, 하느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으로 구분하게 하시고, 성소에서는 제사장이 지성소에서는 대제사장이 각각 섬기게 하였던 현재의 새 언약 속죄제도 예법의 예표(豫表) [ antitype ㅡ 대형(對型) ]였던 것이다.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축복한 빵과 잔에 함께 있는 주님의 몸과 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는 일, 주님의 살은 드리운 휘장이 되어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고, 우리는 제사장이 되어 마시는 주님의 피는 법궤앞 휘장에 뿌려지는 대속이 되며,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되어 속죄일인 세상 끝에 우리의 성소를 정결하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새 언약 속죄제도의 모든 믿음의 예법은, 대속의 제물이 짐승의 피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로 바뀌었을 뿐, 모세의 장막제사에서 보인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각각 섬기는 모든 일의 지향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모세의 장막제사의 본체(실체)는 현재 우리들 새 언약의 속죄제도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쳐다보지 않고서도 호수에 비친 달을 보고 초승달인지 둥근달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처럼, 장차 올 좋은일의 그림자인 모세의 장막제사를 본다면 현재의 새 언약 속죄제도의 예법도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해를 돕기 위하여 많은 설명을 하였으나, 아주 간단한 사실은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축복한 잔을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 라는 그 말씀에 모든 구원의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그것은 축복한 잔을 가리키는 것이다.

축복한 잔은 무엇이란 말인가?     거기에는 속죄양 예수님의 영적인피가 함께 있다는 것이다.

죄 사함을 얻게 하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죄를 지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회개하며 마셔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번역에 성소를 지성소로 번역함은 잘못된 것임을 이번 기회에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결코 지성소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지성소에는 오로지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