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매일 하여야 할 주님의 만찬은 ㅡ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다락 방에서 유월절[The Passover]음식을 잡수신 다음 행하신 일로,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니라. [=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너희가 나를 기억하며 이를 행하여라.][마태복음 26장:26 - 28절. 마가복음 14장:22 - 24절. 누가복음 22장:17 - 20절]』

 

주님의 만찬을 오늘날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하고 있으며, 왜? 먹고 마셔야 하는지 그 의미조차 무엇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 채, 먹고 마시라고 하였으므로 여러 가지의 의미를 붙여 먹고 마시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다. 주님의 만찬에 있어서 그 의미에 관하여는 다음에 연결되는 『6.속죄와 감사』의 『죄사함을 위한 새언약의 제사』에서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주님의 만찬에 있어서 빵과 잔을 어떻게 주님의 몸과 피로 생각하면서 먹고 마시는지를 설명하기로 한다.

 

▶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그리고 성공회에서는, 빵과 포도주를 들어 사제가기도하기를 『우리가 받자올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하는데, 이것을 全質變化[전질변화]라고 하며 그 뜻은 글자 그대로 빵과 포도주가 기도하는 순간에, 예수님의 살과 피로 완전히 변화[change]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빵과 포도주는 더 이상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그 빵과 포도주 자체가 주님의 몸과 피라고 믿으며 먹고 마시는데, 교회 예배의 핵심을 이루며 매일 미사때 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주님의 만찬을 하고 있다. 그리고 죄가 있을 경우에는 그 죄를 고해성사를 통하여 용서받은 후에 먹고 마셔야 한다고 한다.

 

▶ 개신교회에서는 구교회에서 하는 이와 같은 방법에 대하여 化體說[화체설]이라 하여 구교회에서 하는 그와 같은 방법을 미신적 행위라 주장하여, 그들은 빵과 포도주에 대하여 아무런 축복의 기도 없이, 일 년에 서너 번 그냥 성경을 읽고 나누어 먹고 마시면서 성찬식이라고 하는데, 빵과 포도주는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며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으로서, 성찬에 대한 개신교회의 몇 가지 이론을 보면 다음과 같다.

 

루터의 공재 설우리에게 주어진 떡과 포도주 안에, 함께, 밑에,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가 있으며,  그 자연적인 몸을 받아 먹고 마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 곧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시고 몸이 되시는 교회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며, 그러나 만찬의 主旨[주지]는 육체를 통하여 먹고 마심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귀한 말씀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도서출판 컨콜디아사 발행: 말틴루터의 소교리문답서와 해설 204p 에서.......

 

▶ 울리히[훌드라이히]츠빙글리[ulichzwingli]는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어떠한 육체적 임재도 부정하였다. 육체적 몸은 한 장소에만 있을 수 있고 그리스도의 몸은 승천이후 하늘에 있다. 게다가 육체적인 것들은 영적 실재를 담거나 전달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을 "이것은 내 몸을 의미한다" 라고 해석, 한번 죽은 그리스도의 몸이 빵과 포도주로 되어 사람들에게 분배될 수는 없으며, 루터의 주장인 그리스도의 육체적 공재설에 대하여 그것은 불합리한 카톨릭 미신의 잔재라고 주장하였다.

 

▶ 칼빈의 성찬론은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과 같은 물질적인 실재론도 아니요, 쯔빙글리와 같은 상징주의 기념설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영적인 임재설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물질적인 실재론이 아니라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며, 이를 통하여 성령의 사역으로 상징물이 그리스도의 본체와 연결되고, 이를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먹음으로 그리스도와 합일되고, 그가 하신 모든 은사가 우리의 것으로 된다는 설로서, 신체의 편재성(遍在性)을 부정하여 그 빵과 포도주는 역시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 또한 안식일 교회의 성찬을 보면 ㅡ 「날마다 자기의 음식을 먹는 자는 그가 성자이건 죄인이건 간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양육을 받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다. 모든 떡덩이 마다 갈바리아의 십자가의 인이 찍혀있다. 그리스도의 찢어진 육체와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즙을 받을 때에 우리는 상상 가운데 다락방에서 거행된 성만찬에 참석하는 것이다.」 라고 하여 역시 상징을 주장하고 있다. ▷구원의 소망[시조사 발행]에서.......

 

이와 같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서로 다른 견해들은, 사회적 혹은 시대적으로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있고 호응을 얻었다고 하여 모두 옳고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이와 같은 견해들은 우리 주변 생활의 보통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 교의(敎義)에 따라 구원관과도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에, 어느 개인의 주관적 견해나 판단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옳고 그름은 성서를 통하여 논리적이며 합리성의 판단으로 확정하여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이것이 내 몸이니라』『이것은 나의 피』라고 하셨으므로, 빵과 잔을 주님의 몸과 피로 만드는 화체설[전질변화]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으며, 기독교 신앙의 믿음에 있어서 초보적 생각으로 신체의 편재성이 어떻고 하여 말을 만드는 것과, 그리스도의 몸은 승천이후 하늘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분배될 수가 없다는 잡설로, 빵과 잔은 주님의 몸과 피를 의미한다는 상징설 또한 성경에 없는 만든 말에 불과하며, 이러한 가르침은 사람들을 암흑의 길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ㅡ 디모데전서 4장 1절]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ㅡ 디모데후서 4장 3~4절]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느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ㅡ 디모데후서 3장 13~17절]

 

우리는 인간의 쬐끄만 머리로 우리 인간의 주변 생활 속의 방식대로 생각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잣대질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영적인 말씀일 때에는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개미가 인간의 생각을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하물며 하느님의 영적인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온전히 이해를 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빵과 잔을 먹고 마실 때에 주님의 몸과 피를 어떻게 먹고 마셔야 하는가? 성경에 기록한 주님의 말씀 안에서 그 방법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6장 에서는 ㅡ (33)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50)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빵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빵이니 사람이 이 빵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빵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my flesh]. (58)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빵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빵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58절에서는 특히 입으로 먹었던「만나」와 비교하여 실제로 입으로 먹는 빵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주님의 몸과 피를 입으로 먹고 마시는 외적 형태를 더욱더 확실하게 설명하였다.)

 

예수님께서도 잡히시던 밤에 빵과 잔을 축복하시고 『이것이 내 몸이니라』『이것이 나의 피』라고 직접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축복한 빵과 잔을 먹고 마실 때에 빵과 잔에 실제로 함께 있는 하늘에서 내려주신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 이는 전질변화[화체설]도 공재설도 아니며 더더욱 상징설도 아니다.

 

계속하여 요한복음 6장을 살펴보자 ㅡ (52)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라고 하자, (61~63)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이요 생명이라.

 

(63)절에 의하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라』바꾸어서 말하면 『지금까지 너희에게 말한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라는 것은, 육적인 살과 피가 아니라 영적인 살과 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빵과 잔에 손을 얹고 축복의 기도를 함으로써, 그 빵과 잔에 하늘에서 [靈的]으로 내려주시는 주님의 영적인 몸과 영적인 피가 함께 있음을 진심으로 믿으며 먹고 마셔야 한다.

< ※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우리들의 물질적인 육신과는 다른 영적인 몸으로 살아 나셨지만,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구운 생선을 잡수신 것처럼,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우리들도 축복한 빵과 잔에 함께 있는, 영적인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가 있다. ※ >

 

주님께서 내 몸이요 내 피라고 하셨으면? 우리는 주님의 몸과 피라고 믿으면 된다. 영적인 것이라고 하셨으면? 영적인 것으로 믿으면 된다. 하늘에서 내려주신 것 이라고 하셨으면?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믿으면 된다. 이에서 벗어나 말장난으로 이러니 저러니 소설을 쓰지를 말자, 이는 모두 사탄의 유혹에 빠져 사람들을 지옥의 불속으로 몰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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